여성은 Ms.
자지는 Mr.를 쓰는데

Ms.도 선대 페미니스트 실라 마이클스 대인이 창조하신거 아노?
난 어린시절 저거 처음볼때, 그래도 6외국은 여남동등한 느낌이 있구나(미혼일때만)9 이렇게 생각했었노.
근데 우리가 볼때 여남이 동등해보인다 싶을 때는 항상 선대 페미니스트들의 업적들이었더노.

원래 
기혼여성은 Mrs.
미혼여성은 Mss. 였노

그런데 실라 마이클스의 미즈운동으로 
결혼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 Ms. 가 보편화 된거였다이기.

밑은 관련 기사링크와 본문 내용 정리

http://m.mk.co.kr/news/headline/2017/457780

NYT, 지난달 별세한 '미즈 운동' 선구자 마이클스 삶 조명 




여성 호칭 '미즈'(Ms.)의 '사실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여성 운동가 실라 마이클스가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향년 78세, 사인은 급성 백혈병이었다.

미즈라는 용어의 대중화를 이끈 '업적'에도 불구하고 다소 생소한 이름 탓인지 의 별세 소식은 주요 외신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 실라 마이클스는 여성이고, 대명사도 그로 적는거 봐라.
기자도 여성이어야 이렇게 세밀한 부분에서도 차별이 없는거노)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뒤늦게 마이클스의 부고를 장문의 기사로 전하면서 미즈라는 단어와의 '운명적 만남' 등 그의 삶을 조명했다.

미즈(Ms.)는 결혼 여부에 따라 여성을 지칭하는
미스(Miss.), 미시즈(Mrs.)를 대신해
결혼과 관계없이 여성을 부르는 용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지역신문 '더 선데이 리퍼블리칸'이 상황에 따라 쉽게 축약해 쓸 수 있는 호칭으로 '미즈'를 소개하면서다.

하지만 실제로 거의 사용되지는 않았고 이후 일부 학자들의 책에 이 용어가 언급되는 정도였다.

본격적인 대중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뒤인 1960년대 초, 마이클스가 이 단어와 '운명적 조우'를 하게 되면서다.

마이클스는 당시 맨해튼에서 함께 살던 룸메이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마리 해밀턴의 우편물에 '미즈 마리 해밀턴'(Ms. Mari Hamilton)이라고 적힌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때까지 '미즈'라는 단어를 전혀 몰랐던 마이클스는 해밀턴에게 "오타가 난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해밀턴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최소한 그 단어가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는 알고 있단다."

(개좆팔 난 이 부분이 매우 아쉽노. 끝에서도 말할거지만 여성주의가 좌우 줄타기에서 기준을 여성이 아닌 가부장제에 맞춰 가부장제를 타파하니까 진보 좌파로 간게 아쉽노.

페미니즘이 오로지 여성인권만을 생각했으면 여성만을 수호한다는 입장의 보수에 있을거다이기. 자지배들의 보수가 아니라)

마이클스가 '운명적'이라고 느낀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남성의 '미스터'(Mr.)처럼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을 부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축약형을 찾아 헤매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여성을 결혼 여부에 따라 구분 짓지 않는 용어 찾기에 몰두하게 된 것은 순탄치 않았던 그의 가정사 때문이었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그의 어머니는 정식 남편이 아닌 애인과의 사이에서 마이클스를 낳았다. 그 탓에 마이클스는 외가에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3년 여성 인권 운동을 하다 체포된 뒤에는 가족과 아예 의절했다.

2007년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마이클스는 "내가 있을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아무도 '너는 내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며 "내가 따라 하고 싶은 결혼 생활을 별로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재발견된 '미즈'라는 용어가 마침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마이클스가 1969년 뉴욕의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단어를 언급하면서였다.

여성운동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마침 이 방송을 듣고, 곧 창간한 여성운동 잡지의 제호를 '미즈'로 정하면서 이 단어는 북미 대륙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마이클스는 2000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즈'라는 용어가 가질 파급력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즈'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다른 기사도 찾아봤는데 내용은 비슷하지만 이게 조금 더 읽기 편하게 서술돼 있고 좀 더 구체적이라 이것도 넣었노.

https://www.google.com/am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Amp.html%3fidxno=115578


‘Ms.’는 그 자체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존재와 권리를 상징하는 언어다.


‘Ms.’가 일상 언어의 일부가 된 것은 고작 50여 년 전의 일이다. 남성은 언제나 미스터(Mr.)로 불렸지만, 여성은 미스(Miss, 미혼), 미세스(Mrs, 기혼)처럼 남성과의 관계에 따라서 다른 호칭을 가져야 했다. 

마이클스는 이런 호칭을 거부하고 ‘M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7년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버지의 소유가 아니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소유물도 아니다”라며 여성 주체를 일컬을 새로운 언어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 기사도 여성 대명사를 6그9라고 썼노.
원문 내가 고친것도 아닌데 역시 여성 기자들이라 그런지 그 성별기자들이랑 다르노)


<미즈운동의 확산>

당시 1960년대 제2세대 페미니즘의 물결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관심 속에서 ‘Ms.’ 사용 캠페인은 높은 주목을 받았다. 1969년 마이클스가 뉴욕의 진보성향 FM 라디오 방송 ‘WBAI’에 출연해 ‘Ms.’를 소개했다. 이에 영감을 얻은 미국의 대표 페미니스트이자 인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72년 창간한 페미니스트 잡지를 ‘Ms.’로 명명했다. 잡지 ‘Ms.’는 8일 만에 매진됐다.

얼마 후 뉴욕의 한 여성 의원이 여성이 공식 문서에 결혼 여부를 적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1972년 미 정부는 공식 문서에 ‘Miss’나 ‘Mrs’ 대신 ‘Ms’를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1986년 뉴욕타임스는 1면에 사고를 게재해 “오늘부터 모든 기사에서 ‘Ms.’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편집자주에는 이런 설명이 적혔다. “우리는 ‘Ms.’가 이제 공용어가 됐으며, 언어의 규정을 바꾸고 있다고 믿습니다.”


<미즈운동 창시자 실라 마이클스의 생애>

1959년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마이클스는 한 세대를 대표한 페미니스트이자 시민권 운동가, 작가, 편집자이자 출판인이었다.

1939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입학 이후로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등 인권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윌리엄메리대학 2학년 재학 중, 마이클스는 대학 언론을 통해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의 사설을 썼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 1963년 8월23일, 그는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 대행진을 기획하고 주도했다. 이 때문에 애틀랜타에서 경찰에 체포당했고, 그의 활동에 거세게 반대했던 부모와는 결국 연을 끊었다. 그리고 1980년대 한 일본남성 세프와 결혼했지만 바로 이혼했다. 

미국의 대표 페미니스트 중 하나로 알려진 그는 백혈병 투병 끝에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창간 45주년을 맞은 미즈 매거진은 지난 7일 ‘평등의 챔피언 실라 마이클스를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에디토리얼을 통해 마이클스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대신 ‘인간’으로 정의했다”며,

“마이클스의 ‘Ms.’ 대중화 운동은 현대 페미니스트 운동 초창기의 수많은 싸움 중 하나였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세아 기자


기사 읽으면서 여성을 지칭할때도
6그녀9같은 애비뒤진 대명사가 아니라 그로 제대로 적은게 인상깊었노.

그리고 실라 마이클스의 생애에서 모부와 연을 끊은거에서
역시 큰 일을 하기 위한 위인은 뜻이다르다면 모부와도 연을 끊고 독립적인 주체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노.

또 여성이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 망혼하지않고 비혼을 유지하되, 망혼했더라도 빨리 탈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역사로 읽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진보와 보수의 기준을 여성이 아닌 가부장제에 두었기에 가부장제라는 체제를 뒤엎는다는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진보쪽에 붙은 거다.

사실 여성주의자들은 좌우 줄타기 또한 여성의 관점을 기준으로 잡아야 여성의 권력을 높일 수 있노.

즉 여성을 기준으로 진보 보수를 나누면
오로지 생물학적 여성만의 권리만 다룬다는 입장에서 보수,
생물학적 여성외에 남자게이트젠동물 등 까지 다뤄준다는 진보
이렇게 나눌 수 있노.

우리는 반드시 생물학적 여성만의 인권만을 생각하자이기야. 그게 다른 거 방해받지않고 여성을 해방할 수 있는 길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