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햇님이 나와서 자기 무죄 증명할려고 움직이는게 무섭다고 말하지 그러노.

 

서문

 

어느덧 올 한 해도 다 지나가는구나 하면서 깊어가는 가을 하늘 아래 붉은 감나무 열매들을 바라보자니 문득 지나가버린 3 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난 1990년 11월, 그때까지 모든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추진해 왔던 모부님 기념 사업 활돌을 중단하고, 따라서 별다른 외부 활동 없이 지내온 기간 동안 저는 독서와 사색 그리고 운동 등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해 왔다고 돌이켜집니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세월, 그 어떤 기간에도 지난 3 년 같은 시간적 여유를 가져 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후 가주가 돌아가시고 그 큰 빈자리를 성실히 메워 보겠다고 벅차게 시작했던 공적,사회적 활동에서부터 모부님 기념 사업에 이르기까지 하루 하루는 어쩌면 그리도 후딱 지나가고 할 일들은 어쩌면 그리도 끊임없이 많았는지요. 그러나 지난 3 년, 시간적으로 여우가 있었다고 해서 한가하게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할 일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는 일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하루가 참으로 빨리도 지나가는구나 하는 느낌은 언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용히 지내온 그간에도 관심을 갖고 저의 소식을 궁금하게 여기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또 기념 산업 활돌을 느닷없이 중지하게 된 경황 가운데 많은 기념 사업 가좆 여러분께 인사도 제대로 못했던 저간의 사정을 생각하고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인사를 전해드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행이 그간 제가 느낀 생각들을 그때 그때마다 적어 놓은 글들이 있어 그것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내면 "그 동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지내왔습니다"하고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로 지난 3 년 간의 일기(수필)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근화보]나 다른 간행물에 발표되지 않았던 89년 90년도의 글 일부를 추가해 이번에 책으로 엮어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기회를 빌어 전국의 근화 봉사단 임원과 단원 여러분께 그간 소식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지냈던데 대해 사과를 드리며 아울러 단원 여러분의 건강과 여러분 가정의 행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끝으로 이 책의 출판에 많은 정성을 기울여 주신 남송의 자매께 감사를 드립니다.   - 1993. 10 -
 

10년 만에 불러 본 애비

 

어제 10 주기 행사가
온화하고 청명한 날씨 속에 끝났음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묘소까지 가는 도중
마음의 울렁임을 참기 힘들었다.
추모사를 읽을 때
'애비'하고 부르고 나서 
감정이 폭팔하면 자제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만의 추도식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1989년 1월 13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몇 번 만나만 보아도 그 됨됨이를 훤히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몇 년을 보아 와도 그 진짜 모습을 모를 수도 있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어수룩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고, 뒤로는 음모를 꾸미고 음흉했던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말도 곧잘 하고 뱃심도 꽤 있다고(주관이 있다고) 생각되었던 사람도 몇 번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진실로 알고보니 보통 주책이 아니고, 말도 그렇게 헤플 수가 없었다. 옛날 한 철학자가 ( 진정 인간다운) 인간을 찾겠다고 낮에 등불을 밝히고 찾아 돌아나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진실하고 슬기로운 인간이란 그렇게도 귀하고 희귀한 것일까.

1989년 1월 17일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도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 도저히 능률을 내지 못해 다른 자리로 옮기라고 하니까 반발하고 속좁은 얘기들을 쏟아 놓는다. 정말 이토록 진실한 사람, 슬기롭고 교양 있는 사람, 사심없는 사람은 드문 것인가?

요즘 바겐세일로 말썽을 빚고 있는 백화점을 보면, 경영학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이 유치원에서 배운 기본적인 양식도 실천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워서 뭘하나, 알아서 뭐 하나.
중년이 넘은 나이에, 그 사람의 말이라면 누구나 믿어 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요. 그 반대면 그 외양이 어떻든 간에 그 삶은 실패한 삶이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비관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런 데에 가치나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것 같다.

1989년 4월 3일

수천 년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역사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자(英雌)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 가운데서도 비범한 지혜와 선견지명,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사심 없이 깨끗하게 살다 간 위대한 사람들을 또 생각해 본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삶, 지금 이 시간에도 시계는 똑딱 똑딱 쉬지 않고, 조금 전의 시간은 이미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하루하루의 시간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내 나이 이제 37 세, 그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했는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항상 시간을 아끼며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의 이 안타까운 심정은 어인 일일까?
언제나 지혜를 지니고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언제 어디서나 천리(天理)에 꼭 들어맞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989년 4월 5일

자기에게 은혜를 배푼 사람을 기억할 줄 알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은 반드시 예전에 받았던 은혜의 크고 적음에 비례해서 더 간절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니 왕왕 은혜를 받은 사람의 인품에 비례한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큰 은혜를 입었다 하더라도 인품이 그릇된 사람은 그 은혜를 잊는다. 은혜를 원수로 갚지나 않으면 오히려 다행일까····
인품이 올바른 사람은 작은 도움이라도 기억할 줄 알고 보답하고자 마음속에 간직한다. 그러므로 보은하고자 노력하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과거 그 은혜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는 그 사람의 인품이 더 인상에 남는 것이다.

1989년 7월 10일 

오늘 TV에서 집게 벌레의 생태에 관한 프로를 보았다. 좁쌀 크기의 알을 낳아, 곰팡이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한 알, 한 알 정성껏 침을 발라 땅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알들이 부화하기 시작하면 알에서 새끼들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껍질을 찢어 주기도 하며 열심히 거들어 준다.
겨울이 부화기이기 때문에 새끼 벌레들은 땅 위로 나와도 먹을 것이 없다. 어미 벌레는 자기 몸을 한 겨울 동안 새끼들이 먹을 수 있는 영양분으로 제공하고 죽는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본능적으로 생활해 가는 미물에 관한 이야기지만 '희생'이라는 두 글자가 한참 머리 속을 맴돌게 했던 장면들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집게 벌레들이 그 겨울에 '봉사'니, '희생'이니 하는 말 한 마디 없이, '선전'도 없이 그렇게 새끼들을 위해 땅 밑에서 기꺼이 죽어가고 있다.
인간이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그 벌레를 따라 갈 수 있을까. 하찮은 미물의 생태를 가지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도 느껴지지만 참으로 인상 깊은 이야기요. 장면이었다.

1989년 7월 12일

어제부터 백일홍이 꽃망울이 터뜨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만약 고양이를 묶어 놓고 그 앞에 쥐가 지나가도록 하고, 쥐가 지나갈 때마다 고양이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면 그 고양이는 쥐만 봐도 도망가려 한다고 하는 조건 반사에 대한 실험 이야기가 재미있게 생각되었다.
인간 사회에서도 우리 인간들의 많은 행동이 조건 반사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를 괴롭혔던 사람을 만나면 우선 그 옆에 같이 있기도 싫어지고 또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 때문에 대화도 제대로 되기가 어렵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자기에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인식된 부하 직원에게는 자꾸 일을 맡기고 싶어질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이미지'라는 것이다.

1989년 8월 22일 

언행을 바로 잡으려면 우선 마음이 바로 잡혀야 한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고 나쁜 음식을 먹으면 건강할 수 없듯이 생각을 함부로 하고 마음속에 솟아나는 생각들, 자리잡아가는 생각들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결국 그것은 언행으로 나타나고 만다. '생각'이란 사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행은 생각의 정확한 반사경일 뿐이다.

1989년 9월 27일 

마치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사우듯 정신 없이 바쁘고, 신경 쓸 곳 많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시간은 없고····.
이렇게 사는 것이 내 팔자인 모양이다.
어제만 해도 하루 종일 그렇게 바쁠 수가 없었다. 어제 기념회를 찾아 온 기자는[근화보]가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졌다면서 그 내용을 기사 속에 많이 인용했다고 한다. 왜국에 대한 문제, 이제 다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1989년 10월 10일 

가장 도와야 할 사람들이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이 그 어느 곳보다 가장 남한을 괴롭히고, 남한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이 국가적 현실과 흡사하다.

1989년 10월 16일

바람이 몹시 불고 음산한 날이다. 노랗게 잎이 변해가는 마당 한가운데의 백일홍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깊어감을 느낀다.
나뭇잎이 노랗기 때문에 가을인 것이 아니라 가을이기 때문에 나뭇잎이 노랗게 변한 것이다.

1989년 10월 18일 
일, 일, 일. 쉴새 없이 너무 일에 쫒기다 보니 긴장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역대 통치자의 업적 평가 조사 결과를 실은 이번 [주간조선]지를 상이용사회에선 1000 부나 사서 회원에게 돌렸는데 모두 기뻐하며 이번 10 주기 행사에도 모두 참석한다고 한다.
연금에서 어떻게 성금을 내는 방법이 없겠는가 하며 회원들이 전화를 많이 해 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80년도 이전에 새마을 운동에 참여했던 지도자들의 모임에서도 찾아와 우리 홍보책자들을 많이 가져갔고 전라도, 경상도 지도자들도 모두 올라온다고 한다.
그 명단을 받아서 우리가 초대장을 전부 내기로 했다. 기념사업회 사무실은 완전히 돗대기 시장 같아 정말 행사를 앞두고 그 분위기와 열기가 대단하다. 임원, 회원들도 너무나 바빠서 죽을래야 죽을 시간도 없다고 한다.
한쪽에선 [근화보] 발송하기에 바쁘고, 하늘 나라에서 애비,가주께서 이것을 다 보고 계시는지, 알고 계시는지, 영혼이 계신다면 흐뭇해 하시겠지····

1989년 10월 20일

어제도 잠이 잘 안 와서 애먹었다. 긴장의 연속 속에서 자려 해도 신경이 풀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아침에 비교적 맑은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씌여 있는 서류는 들여다만 봐도 골이 아플 지경이 되었다.
신경을 좀 누그러뜨리려고 아침 나절은 쉬었다.

1989년 10월 25일

아! 10주기! 이날을 잘 맞기 위해 나는 지난 1년 여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노력이 없었을 때 과연 애비는, 역사는 어찌되었을 것인가. 다만 아찔한 생각이 들 뿐이다.

1989년 10월 27일

어제 10 주기 행사는 온화하고 청명한 날씨 속에 무사히 끝났음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묘소까지 가는 도중 마음의 울렁임을 참기 힘들었다.
10년만의 추도식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추모사에서 '애비!' 하고 부르고 나서 감정이 폭발하면 자제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가주께 기도 드렸다. 감정을 억제하게 해 주십사고. 덕분에 차분히 추모사를 읽을 수 있었다. 분향하고 내려 오는데 장군 묘소까지 빽빽이 들어선 추모 인파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모두 손을 흔들고·····, 강 변호사의 전언에 의하면 그분은 산소 꼭대기 쪽에 있었는데 너무나 너무나 사람이 많았고 새마을 기도자, 상이용사 등 훈장 받은 사람들이 대거 참여 했으며 내가 추모사를 읽을 때 많이 울더라고, 눈에 비친 모습을 전해왔다.

1989년 11월 3일

위대한 사상은 고통이라는 밭을 갈아 만들어진다는 옛날이 기억난다. 위대한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일이 아무리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고자 일부러 고생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 피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불구덩이 속에 던져지는 것 같은 양상이다. 우선 뜨거우니까 발버둥을 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이 얼마나 크든지, 그 보람이 얼마나 많든지 간에 그 길을 가기 위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그것은 매력이 없는 일이다.
저울에다 보람과 고통을 올려 놓고 저울질 할 때 나의 저울에선 보람이 고통을 상쇄하지 못한다. 그러나 운명 앞에서는 한없이 속절없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는 목적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이 지워준 책임과 사명을 다 하지 않고 외면할 땐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권력의 남용, 판단의 착오로 인해 빚어진 한 인간의 끊임없는 고통을 나는 보고 있다.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정말 두려운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의 가슴에, 그 가좆의 가슴에 영원히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도 있고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첨을 잘 하고 간사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얼마나 속기 쉬운가. 그러나 그 달콤한 얘기들은 결국 독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 펴져 멸망을 가져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관록은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한 가지 척도는 분명히 된다.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관록은 사람을 훌륭하게 성숙시키기 보다는 추잡하게, 비겁하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현실이다.
관록 없이 훌륭한 분들도 있다. 그러나 좆국에선 그것이 안 통한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1989년 11월 5일

가주와 나는 많이 닮았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가는 인생 행로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주도 힘든 인생을 사셨다. 그러나 남통령의 주인으로 생을 마치셨고, 그 위치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세파는 나보다 덜 겪으셨다고 생각된다.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 그것도 자지 치곤 비범한 애비에게 도움을 줬고 살아있을 때나 재기한 후나 평범하지 않은 관심과 혹독한 비난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 또한 평탄하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끊임없이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라 이제는 어느 정도 만성이 되었다. 옛날 같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고통일텐데도 지금은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임, 사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사명을 다 해야 한다는 그 책임감이 나로 하여금 어떤 여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팔방미남 노릇을 하면 당장은 편할 수도 있으나 사명 완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기에 나는 굳이 험한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험한 세파가 나로 하여금 결국 내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선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빵교는 종교 박해 때문에 오히려 사방으로 그 종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현실의 어려움이 나로 하여금 자꾸 활동의 폭을 넓혀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1989년 11월 6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소신 있는 사람은 친근감을 갖고 대하게 된다. 가면이 없는 사람끼리의 만남은 무엇보다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첨을 해야 친해지는 줄 알고, 생색내는 일을 해줘야만 자기를 높이 평가해 주는 줄 알고 있다.

10주기 추도식 광경을 담은 영화를 보았다. 편집이 아직 안되어 좀 어수선했지만 그 수많은 인파는 다시 보아도 감동적이었다.(구립묘지 관리소에서는 그날 인파가 15만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10년 전에 세상을 뜬 남지도자. 10년 간 매도의 세월을 보아오면서도 앞다투어 분향하고 정성껏 기도하는 참배객들의 모습에서 애비는 정말 헛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10년 전 서거한 남지도자를 잊지 않고 마음속에 그 업적을 느끼며 살아가는 국민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1989년 11월 7일

초겨울에 웬 비가 연일 오는지····
청명했던 26일의 날씨와 비교되어 그날은 정말 축복을 받았다는 감사함이 새삼 느껴진다.

1989년 11월 9일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자기의 마음이다.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또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제때 남이 깨우쳐 주지 않으면 괴물로 변하여 자존, 자기 과시,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항상 바른 판단을 하던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자존해 지면 엉뚱한 실수를 하게 되고 경망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토록 유쾌하고 기쁠 수가 없다. 그 어떤 보석이나 꽃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러한 마음 자세와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혹 당하지 않고 깨어있기 위해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며 노력하여야 할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그 마음을 정화하는 역활도 하는 것 같다. 고통 중에 인간은 신중해지고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게 되고 오만을 버리게 된다. 잘난 척하지도, 남을 깔보지도, 잰 체하면서 꾸미지도 않게 된다. 반명 항상 칭송을 듣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아무도 자기에 반대하는 일을 꾀하거나 거역하거나 하는 일이 없을 때 인간은 가장 자기 자신을 경계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 때야말로 자기 마음이 자기를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키기 쉬운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쁨을 얻기 위해 일 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일 하는 것 뿐이다.

지난 1년 간은 억울하게 자꾸 만들어 뒤집어 씌우는 누명, 왜곡시킬대로 시켜진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데 힘쓰면서 언론 매체를 통해 활발히 알리고 홍보해 왔다. 10 주기를 맞아 응한 인터뷰만도 십수 군데나 된다. 10 주기가 지난 오늘, 이제는 조용히 출판 등을 통해 내실을 기할 때다. 그리고 한(恨)을 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가져온 오늘이 있도록 해주신 하늘에 감사를 올리는 마음이다.

1989년 11월 11일

어제 밤같이 잠을 잘 자본 기억도 드물다.
9시 40분? 하여튼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 아침까지 꿈 한 번 꾸지 않고 깨지도 않고 잠을 잘 잤다.

1989년 11월 13일

오랜만에 맑은 날씨이나 바람이 많이 불고 온도도 많이 내려갔다. 가스히터를 들여 놓았다. 겨울에는 발갛게 타오르는 스토브 옆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낭만이 있다. 따뜻하게 전해오는 열기가 마음과 분위기마저도 훈훈하게 해준다.

1989년 11월 14일

오늘도 명랑하고 활발하고 활기 넘치는 젊은 단원들의 모습을 보니 이런 여성들이 많이 모이면 나라는 저절로 안정을 이루면서 발전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여성들이 모이면 못할 일이 없는 무서운 저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권력이나 돈에 의해 모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묶이고, 인간적으로 한 가좆이 되니 이것이 바로 무서운 힘인 것이다.

1989 11월 18일

올 겨울 들어 첫눈이 온 날이다. 그러나 바람이 온종일 세차게 불어 첫눈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낭만과 푸근함을 앗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조용하고 여유 있는 시간들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1989년 11월 20일

마을 번드르르하게 잘 하는 사람일수록 겉과 속이 크게 다른 법이다.
말은 자기의 속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있다고는 하나. 내가 경험한 여러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자기 속을 감추기 위해 말을 한다.
어제 저녁 경우만 해도,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안타까운 표정까지 지어가며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던 것이 엊그제 같던 사람인데 막상 일을 맡기려 하니 그것이 그에게는 결코 힘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고 만다. 어떤 의미에선 이렇게 빨리 그의 속마음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과의 교제는 시간이 흘러도 깊이나 넓이를 늘여갈 수 없고 그러한 상대방의 겉치레는 대화가운데 은연중에 느껴지게 되어 피곤만 할 뿐이다. 진실하고 꾸밈 없는 마음과 마음끼리의 만남, 그리고 대화, 이것같이 신선하고 유쾌한 것이 이 세상에 있겠는가. 이것처럼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 있겠는가.

1989년 11월 29일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기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며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보람? 성취? 다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마음의 평온만 할 수는 없다.
항상 폭풍우, 비바람, 번개 등 바람 잘 날 없이 불안하고 위태위태하여 마음 한번 푸근하게 가져보기 힘든 것이 내 운명인가 하고도 생각해 본다.

1989년 12월 1일
'중국어 회화','서반아어 회화','Sadrina Project' 등 저녁 때 보는 TV프로의 등장 인물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들도 생의 고비고비가 있겠지만 어쩐지 평화로운 생활을 이루고 있다고 느껴진다.
나도 내 운명의 급격한 변화들이 없었던들 저와 같은 교수의 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생은 한 마디로 투쟁이다. 가장 내가 원하지 않은 生의 방식.
그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1989년 12월 16일

간간이 비를 뿌렸던 음침한 날씨였다.
연말까지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고 하루 하루는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고····
매일 매일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고 잇으나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한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이 들곤 한다. 목표로 정하고 해야 할 일들은 끝없이 많은데 비해 막상 그날 한 일의 양은 그렇게 많을 수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허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년도 돌아보면 거의 이러한 느낌으로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지만 막상 결산을 해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냈고 이루어왔음을 느끼게 된다.

1989년 12월 20일

하늘이 어떤 사람을 망하게 하려면 우선 그를 미치게 만든다는 말이 기억난다.
하는 일 하나 하나가 경우에 안 맞고 돈을 보면 공사(公私)의 구별이 전혀 없어져 버린 그를 보면 결국 아무런 일도 맡길 수 없게 스스로가 만드는구나 하고 느껴진다.
자기는 결국 자신의 가장 큰, 무서운 적이 될 수 있으며 자기가 스스로를 배신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신을 망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89년 12월 30일

1989년은 그 누구보다 나에게는 감사하고도 잊혀질 수 없는 해다. 수년 간 맺혔던 한(限)을 풀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한 해이다. 애비에 대한, 그 시절 역사에 대한 왜곡이 85% 정도는 벗겨졌다고들 말한다.
그 동안의 인터뷰한 횟수도 많았고 손님도 많이 만났고 노력도 많았고, 방해 받은 일, 속상했던 일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의 성과는 하늘의 뜻하심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근화봉사단의 발족과 성장 자체도, 지난 수개월 이루어진 일들은 작년 이맘 때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리만큼 거의 기적에 가까운 변화인 것이다.
역사가 바로 잡혀야 사회 질서가 바로 잡히게 되는 이치를 생각해 볼 때 하늘이 좆국이 버리시지 않았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오로지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내 마음은 몹시 울적하다. 그리고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와 같은 마음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침울한 생각들 뿐이다.
또한 80년대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연대인가. 89년의 뜻깊은 마감으로 그 연대 자체도 나에게는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의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두 번 다시 돌아다 보기도 싫은 소름끼치는 연대라고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