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마음은 나의 이익을 향해
여유있게 나에게 투자를 하며 
머리로는 차갑게 계산을 해라 여자들아


(노예근성 시녀근성 하녀근성에 대해) 


철학자가 쓴 것 중에 시계침 돌아가서 가까스로 맞는 거 끌어온다. 이 냄작가 여혐 버무리라니까 맞는 거만 대충 봐라 익이아





함무라비 법전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잘해 주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위해를 가해야 한다. 이것은 만고불면의 진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거꾸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함부로 대하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는 비위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일단 함무라비 법전을 관철시키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 노예 도덕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간파해야만 한다. 강한 자에게 핍박을 받는 약자가 어떻게 강자에게 자신이 당한 것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말인가. 복수를 시행할 힘조차 없는데. 이럴 때 예수의 속삭임이 우리의 나약함을 정당화하며 찾아온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갚는 것은 정말로 성스럽고 위대한 일이야." 이런 속삭임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자신에게 원수를 갚을 수도 있고 갚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는 양 스스로를 기만하게 된다. 약자가 복수를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 강자에게 복수할 수조차 없는 존재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잊지 말자. 사랑이든 복수든 그것은 오직 자유로운 자, 혹은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조차 없다. 강자가 되었을 때에만 약자를 원수를 용서할 자격을 갖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 해악을 당했지만 복수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면, 아주 천천히 힘을 키워서 강해져야 한다. 5년이든 10년이든 치욕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마침내 해악을 가한 사람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게 되는 날, 우리는 진정 결정할 수 있다. 계획대로 복수를 추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용서할 수도 있다.



용서는 네가 강자가 되었을 때만 할 수 있는 거노.
약자는 이해심이 많고 관용적이다?
사실은 강요받은 거노.
받은 만큼 복수하고 한남에게 받은 만큼,그 이상을 돌려줘야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