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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름대로 인생에 대해서 결론 내린 바를 정리해뒀었노 

나는 무슨 상투적인말 하나라도 그대로 못받아들이는 년이고 내 머리속 논리회로로 납득해야만 받아들인다

그래서 6욕심을 버리고 감사하고 살면 행복해져요9 이따위 머가리 댕청해보이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이기헌

그리고 6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9 라는 흔한 말도 왜? 를 6969번 생각해보노 ㅋ  

아무튼 내 개인적으로 좆같은 한남사회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 동안 잃어버린 나만의 시간 같은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찰했노 뭐 하나 생각하면 거기에 완전히 몰두해서 하루이틀은 정신작업하는 타입이라 

머가리가 노무 아파서 지나가는 한남콘 부랄을 터뜨려버렸노 껄껄 머리가 시원해지더노 

어찌보면 결론은 상투적이고 그래서 도움이 되는 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나간 잃어버린 시간들이 억울해서 힘들거나 본인 인생을 걸작으로 완벽하게 채우고 싶은데 

오점들이 묻어버린게 노무 싫어서 의지가 안생기거나 등등 고민하는 웜상이 있다면 

한번 읽어봐주길 바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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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누구에게나, 그 어떤 생물에게나 '최대한 많이' 행복해지는 것 이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건 없다는 것이다. 처한 환경은 모두가 다 다르다. 
수명도 다르다. 종 끼리도 다르고 종 안에서도 다르다. 
오로지 할수있는 한 최대한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최대한 더 행복해지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면 된다. 
어이없는 일로 타인에 의해 피해를 받고 범죄를 당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살게 될 때도 있지만, 그런 상황은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고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나올수 있게 도와주고)
그 다음은 다시 좋은 것들로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부당하고, 나쁘고, 범죄이지만 피해를 당했던 고통과 잃어버린 시간은
보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더 부당하고, 나쁘고, 범죄인 것이다)  
복수든, 보상이든, 배상이든 그런걸 받는 경우에도  
자기 삶의 손실을 목격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달성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계점도 없다.   
'할수있는 만큼 최대로' 가 목표인 것이다. 

* 너무 억울해서 안되겠다면 차라리 더 오래살기를 목표로 하자. 
남들보다도 더 오래살아서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자신에게 압박주지 않아도 된다. 
인생은 사실 지금을 기점해서 앞뒤로 +- 몇년이다. 아니 어쩌면 +- 몇달정도밖에 안된다.  

- 지나간 일 중에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것만 취하면 된다.
계속해서 똑같은 고통을 일부러 반복해서 되새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기억이라면 머릿속에서 지워버릴수록 좋다. 
하지만 생물은 그렇게 컴퓨터처럼 지난 흔적이 쉽게 삭제되지는 않는다.  
다친 자국은 점점 희미해지겠지만 그래도 계속 흔적이 남을 수도 있고
정말 식별 불가능할 정도로 옅어질 수도 있고 가능한 경우에는 아예 통째로 잘라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국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좋은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나를 중심으로 좋은 것들만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일단 '지금의 내가' 행복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기억이든 좋은 가능성이든 좋은 감정이든 끌어올 수 있고
사실 지금의 내가 행복하면 자석처럼 그것들이 저절로 끌려와서 내 주위에 자리한다. 
지금 내가 불행해하면 온갖 불행한 것들이 나와 연결지어진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지금이 좋은 것이다. 
지금 불행하다면, 일단 행복하고 볼 수 있게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인생을 둘러보면 행복한 것들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아픔이나 상처를 다루고 싶다면 그때 다루어야 한다. 충분히 행복할때. 

- 만약 과거가 너무 참담해서 가지고갈 좋은 것 조차 없다면? 
지금이 좋다면 그건 상관없다. 마치 다 죽어간 나무에 새로 난 새싹처럼
그 새싹 하나만으로도 이미 좋은 것이다. 그것은 처음으로 갓 태어난 새싹과 다를 바가 없는것이다.  
남은 것은 더 풍성해져서 더 좋아지는 것 뿐.
더 크고 탄탄하고 풍성하고 멋있는지의 차이이긴 한데 이미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행복한것은 똑같고 조금씩 더 성장하는 즐거움도 똑같다. 
뭔가 네가 겪었다고 해서 그게 너의 정체성이 될 필요, 네가 계속 안고가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눈앞에 놓여있는 것 중에서 원하는 것만 취하고 지나간 기억중에서도 
원하는것만 남기면 된다. 중심은 여기있는 바로 나 자신. 
지금 가지고 있는게 새싹이라면 완전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인 것이고 
상처난 부분들을 다 쳐냈더니 그래도 예쁜 잎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면 너무 좋은것이고. 

- 그런데 생물은 다 이 세상이 좆같은걸 알고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면역력과 회복력이 있는 것이다. 좋은 일만 100프로 있기를 바래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렇게 예상하지도 않았다. 좆같은 것들을 다 극복하고서라도 
살아남아 또 행복하게 살고 또 성장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살려고 태어나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각오하고, 그 준비를 다 하고 태어났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내가 멀쩡히 살아있다, 라는 것은 이미 내 몸과 마음이
그것에 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 순간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미 지난건 상관없다. 
심지어 과거의 좋은 것 조차, 이미 현재의 좋음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에만 의미가 있을 뿐
뒤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과거의 나쁜 것이 아직 나를 구성하고 있다면 그 부분은 버리고. 
과거에 잎을 피웠다 -> 현재 잎이 건강하게 존재한다.
이렇게 좋은것은 현재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나는 내 몸에 내가 원하는 것만 지닌 채로 
모든 것을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reset 해서 생각하면 된다.

- 과거가 아무리 좋았던 것이라고 해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물은 우울해지고 어두워진다.
왜냐하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물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동반한다. 즉 생물은 시간을 타고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미래로 가며 그것을 '산다'고 한다. 
살아있는것=움직이는것=미래로 가는것 인데 과거를 향하고 있으면 살수가 없다. 시간은 흐르고 있되 내가 그것을 타고 가고 있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삶은 t(현재시간)에서 t+dt 로 가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t+dt로 가야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미래를 향해서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중요한데 왜 미래는 봐야 하느냐?
계속해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dt 만큼의 시간을 느끼는 것이 삶이 맞다. 
그 dt에 경험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려면 
내가 원하는 길을 쭉 타고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 먼 곳에 있는 가장 큰 목표점을 세워두고 그걸 보고 가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내가 원하는 것, 하고싶은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순간들에 대한 기대이기 때문이다. 


- 또하나 과거를 들여다보면 안좋은 이유는 인간은 원래 행복하고 좋았던건 그걸로 됐기 때문에 
더이상 끌어올리지 않고, 억울하고 힘들었고 아팠던 것만 잘 기억난다. 
그래서 잘 우울해진다. 사실 그런게 잘 기억나는 이유는 앞으로 그 쪽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뇌가 각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용도로만 쓰면 된다.
앞으로의 위험을 조심하는 용도로만 쓰면 되지 그걸 내가 파고들어서 지금의 고통으로
만들라고 있는것이 아니다.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를 계속 돌아볼수록 진짜 과거보다 점점 더 불행하게 보이게 된다. 사실 너의 과거는 니가 생각하는것 만큼 힘든것만 있지는 않았다. 평범한 날들과 즐거운 날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니가 과거를 자꾸 돌이켜볼수록 너를 힘들게 했던것들이 더 기억의 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 그러니 이 모든걸 쉽게 생각하면 
인간은 지금을 비롯한 앞만 보고 계속 가면 되는 것이다. 

- 그 앞에 있어서도 좋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
그것을 '긍정적' 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좋은것과 안좋은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좋은 곳으로 갈려면 그 뒤섞임 가운데 좋은 곳을 향해 보아야 한다. 고양이가 점프할 지점을 뚫어지게 보는것 처럼 말이다. 
긍정적인것은 안좋은것을 억지로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것과 안좋은것이 섞여있는 상황에서 좋은것을 취하는 것이고
미래의 여러 가능성 중에서 좋은 지점을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생물은 움직인다고 했다. 그 움직이는 목표점이 좋은 곳, 살 수 있는 곳이면 생물은 살아난다. 
움직이는 도착점이 살수없는 곳이면 생물은 이미 동력을 잃고 죽어간다. 그러니까 '긍정적'이라는 것은 좋은 곳으로 목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살아날 수 있도록 비전을 계속 제시해주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희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말은 현재가 절망적이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밖에 가진게 없다는 늬앙스가 조금 있으므로 비전이라는 말이 좋다. 


- 나쁜 것은 나쁜것이지만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한 노력은 
더 탄탄한 자기 자신이 되어 남는다. 나쁜일을 겪는게 좋다는 것 x. 
나쁜 일이 없는게 좋은것 o.   
그런데 나쁜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극복한 것은 좋은것 대단한것 잘한것 o.  


- 그러니까 과거가 불행하고 타인에 의해서 부당한 일에 의해서 시간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하고싶은 모든걸 다 
말해보라고 하고 일단 그걸 최대한 해보라고 하자. 그걸 정말 넘치게 다 할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자. 
물론 쓸데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은 정말 나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은 당신이 그걸 이겨내고 살아남았기 때문, 
그리고 살아남은 이유는 또다시 이 다음부터 최대한 행복하기 위해서.
힘들었고 불행했었는가? 지금부터 하고싶은거 다 하고 살고싶은만큼 살자.   

- 사람이 일단 밝아야 하는 이유. 밝다는게 뭘까? 
밝다는건 간접적으로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밝은 것은 지금현재를 행복해하고
미래도 행복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행복하게 생각한다=행복한 곳을 본다,  
이것과 지금 기분과 상태가 밝다는 것은 아주 밀접해서 선후관계가 있긴 하지만
뒤바뀐 선후관계도 성립한다. 그리고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밝으면 밝은 곳을 보게 되어 있다. (사실은 순간적으로 밝은 곳을 봐야 밝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